우리 주변의 거리가 정당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정치인은 상대방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고 거리 곳곳은 매일 같이 ‘말의 전쟁’이 펼쳐진다.
문제는 이처럼 일상의 거리가 ‘전쟁터’, ‘혐오의 배출구’로 오염되게 된 원인을 정치인들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현수막을 함부로 설치하면 처벌 받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수량, 규격, 장소부터 신고 허가 절차까지 모든 제한이 없다. 사실상 마음대로 현수막을 내걸 수 있게 스스로 법을 개정했고, 일반 시민에 비해 과도한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목적이지만 실제 거리에서 이런 목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책 홍보는 드물고 원색과 비방 폄하가 대부분이다.
국민의힘을 ‘국민의짐’으로, 더불어민주당을 ‘더불어돈봉투당’으로, ‘내로남국’, ‘양평고속도로 종점, 누가 변경한 건희?’ 등 정치권이 내건 현수막은 우리 시민들 특히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고의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자 미래세대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으로서 가히 범죄에 가깝다.
이에, 필자 역시 정치인이지만 이 같은 정당 현수막의 폐해를 막고자 지난 8월 8일 경기도북부시군의장협의회에 「정당 현수막 설치 폐지 건의안」을 제안하며, 지자체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정당 현수막 규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정치권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일 “정쟁 현수막 설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 역시 “현수막 상황을 파악해볼 것”이라 밝혔다. 여야 모두 ‘극단 정치의 상징’인 정쟁 현수막으로 인해 극에 달한 국민의 스트레스를 진지하게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정당 현수막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깊고 오래된 고민이 있다. 사실 문제의식이 있어도 ‘저쪽은 거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는 목소리에 떠밀리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젠 이 같은 이유만으로 병폐(病弊)를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권의 정쟁 때문에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 국회에는 정당 현수막 규제를 위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총 12건이 발의된 상태이다. 정치권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조속히 국회에서 개정안을 논의해 혐오 일색의 정당 현수막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G7(Group of Seven)에서 더 나아가 G8(Group of Eight) 대열에 도약할 것이란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제 대한민국도 명실상부 선진국으로서 세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G7에 속하는 선진국 중 현수막 정치를 하는 나라는 없다. 결국, 후진적인 현수막 정치는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 병폐임이 틀림없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앞서 지금이라도 국격에 걸맞은 정치문화 조성을 위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그 시작은 정당 현수막 규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