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황규진 기자]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온 국민이 팔 걷어붙이고 산업화 일꾼으로 나섰다. 그 결과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이루게 됐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우리 것보다 서구의 선진 문물이 좋다는 인식을 만들어냈고,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됐다.
특히, 서구 문화를 모방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은 마치 부정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까지 생겨났다. 급격한 산업화로 가치관과 사회 규범마저 혼란해졌고, 인간 소외 현상은 가속화됐다. 이로 인하여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됐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무런 대가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는 의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열광한다. 한편으로는 갑질과 테러 등을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며 공분하기도 한다. 모두가 팍팍하기만 할 것 같은 세태 속에서 이런 정서적 공감대는 어떤 이유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거와 단절된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내면 속에 우리 고유의 보편적 정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서로 소통하고 신뢰와 배려로 함께 사는 삶을 중시했던 인문학적 통찰, 사람다움이 넘치는 인문공동체에 대한 기억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을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문 가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과거의 좋은 전통을 되살려 ‘인간과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도 아름다운 자산으로 남겨주어야 한다.
소통과 신뢰를 기반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고, 모두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살기 위하여 사람과 사람을 잇는 품격있는 인문도시 포천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인문’이라는 용어가 막연하고 시민들의 관심 밖일 수도 있지만, 우리 포천은 예부터 철학과 문학, 예술 등 지역에 많은 유·무형 인문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시민들과 함께 잠들어 있는 포천의 인문 향기를 되살리려 노력한다면, ‘품격있는 인문도시 포천’ 구현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며, 사람에 관한 학문으로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폭넓은 독서와 학습, 그리고 깊은 사색이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꼭 이 방식을 특정 지을 필요는 없다. 봉사 활동을 통한 깊은 사색만으로도 인문학적 통찰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타 지자체의 시민 인식 조사를 보면 다수의 시민은 인문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인문도시 조성 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나와 상관없는 학문이나 정책으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뿐이다. 충담사의 안민가 중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논어의 ‘君君臣臣父父子子’의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는 의미다.
틀린 게 아니고 다름을 인정하며 모두 각자 정해진 위치와 여건에 맞추어 인문학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인문지기도 하나씩 늘어날 것이고, 포천의 인문 자산들은 ‘포천학’이라는 인문의 향기를 내뿜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품격있는 인문도시 포천’ 구현은 결과를 정해놓고 시작하기보다 ‘시민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또한,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에만 치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소통과 신뢰를 중심으로 인문학적 통찰을 가진 시민 중심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간과 그 삶의 가치’ 회복을 중요시해야 한다.
또한, 시민이 인문 정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와 관련 있는 정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시민이 원하는 참여형 인문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생활 밀착형 인문 프로그램을 보다 많이 개발하고 접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인 인문 활동 참여와 소통, 그리고 자기표현의 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지역 단위 인문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시민 스스로 조성하여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인문생태계를 구현해내는 것이 우선 목표인 셈이다.
‘품격있는 인문도시 포천’ 구현 사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지라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긴 여정의 어디쯤에선가 인문의 향기는 포천시민의 삶 속에 스며들게 될 것이며, 비로소 인간성이 회복된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 또는 20년 후. 인문학적 소통을 갖추고 서로 소통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포천시민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시민 누구나 인문으로 행복의 문을 여는 도시, 포천의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