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갖는 상황에서 20대는 어린 나이인가?
20대는 틴에이저가 아니다.
틴에이저는 말 그대로 13(thirteen)부터 19(nineteen)까지의 나이로 숫자 뒤에 teen이 붙어서 명명된 이름이다. 보통 우리는 10대라고 하는데 20대는 개개인이 하나하나가 완벽한 성인으로서 대학생이던가 아니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사회의 일익을 충분히 담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이다.
요즘, 그 20대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공부해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겪어야 하는 전쟁이라든가 극심한 세계적인 경기 불황 등의 상황이라면 그래도 참고 견디겠는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무리 애써봐야 소용없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자괴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기성세대들이 누리고 있는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인해 수도권에 전셋집 하나 갖기가 불투명한 상황 아니 불가능한 현실! 이것은 젊은 세대에게 치명적이다. 내가 받는 임금의 많은 부분을 주거비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아빠 찬스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엄마 찬스로 군대에서 휴가 나오고, 그렇지 못한 내 아빠 엄마가 내게 미안할까 봐 내가 전전긍긍해야 하고, 표절한 논문으로 학위 받고 그걸로 취업해서 장관까지 하겠다고 하고, 나는 정규직 시험 공부하느라 노량진 쪽방 촌에서 몇 년째 애쓰고 있는데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들은 아무 근거 없이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그나마 하던 알바 자리까지 없어져 부모님 눈치 봐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그저 대통령 취임식 때 나온 공허한 미사여구일 뿐인가!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다.
20대였을 때 어리다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불확실성이야 젊은이들이 갖는 가능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월말에 식비와 집세 난방비와 의료비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정규직에 치이고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우면서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어 신분 보장되는 안정된 일터에서 그들의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삶, 공정한 경쟁 아래 패배하더라도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를 축하해 줄 수 있는 삶, 상대적 약자인 또 다른 비정규직 젊은이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삶, 파이를 키워 공평하게 나누는 정의로운 삶을 희망하는 것이다.
이런 삶이 지금 20대가 지향하는 삶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그저 그들을 믿고 응원할 뿐이다. 그들의 삶에 어설프게 끼어들지 말자.
“대학 안 가고 사회생활 시작하면 1,000만원 주겠다.” “군대 제대하면 3,000만원 주겠다.” “사회생활 시작할 때 1억 통장 주겠다.”
이런 공약으로 젊은 세대를 호도하지 말자.
그들은 거지가 아니다. 그리고 그 돈은 누구 것이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결국 젊은 세대들이 갚아야 할 채무가 아닌가!
일시적 배급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정기적인 임금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자!
그들, 20대가 이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때 또 다음 젊은 세대를 위해 배려하고 베풀 수 있도록 그들을 충분히 밀어 줄 수 있는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1번, 2번의 작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일어나 도전할 수 있는 장기적이며, 유연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자랑스럽게 나누며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회적 연대 의식이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