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황규진 기자]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포천시 신북면의 한 지역공동체에서 이 격언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책상없는학교(대표 정미정)’다.
책상이 있는 ‘책상없는학교’
책상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은 아이들이 충분히 모여 활동할 수 있는 큰 책상도, 컴퓨터가 놓여있는 개인 책상도 있다. 그렇지만 공부 성화나 딱딱한 교실 분위기는 없다. 어른들의 관점으로 재단한 평가 기준도 없다. 아이들에게 ‘책상없는학교’는 ‘꿈이 가득한 놀이터’다.
책상없는학교는 지난 2015년 신북초등학교 앞에서 시작했다. 당시 학교 인근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편의시설이 없었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정미정 대표(49)는 몇몇 뜻이 맞는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협동조합을 세웠다. 책상없는학교의 시작이었다.
책상없는학교는 주말을 제외한 주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늘 열려있다. 학교 숙제와 기초학습은 물론이고 미술, 창의 과학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현재 학생 수는 14명 남짓, 그러나 선생님은 20명이 넘는다. 포천시의 ‘노인일자리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신중년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는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아이들의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책상없는 학교는 아이와 중 장년 노인이 같이 성장하고 살펴주는 생애학습이 구심점으로서 마을 생태계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아 지난해 말 생활SOC주민참여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경기 미래형 돌봄교실 우수사례로 소개되었다. 올해는 교육부장관 유공표창을 받았다.
할머니 선생님들의 활약
할머니 선생님들의 교육은 그 품질과 내용에 있어 여느 전문 강사 못지않다. 6~70년 이상 쌓아온 생활의 지혜와 삶에 대한 이해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추장 담그기와 같은 전통문화체험교실은 그 수준이 매우 높다. 어르신들이 오래전부터 해오신 전통방식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수된다. 단순 놀이 체험을 넘어선 셈이다.
정미정 대표는 “어르신 중에는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매우 많다. 책상없는 학교는 어르신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의 장이면서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돌봄과 배움의 터전이다. 그야말로 윈윈(win-win), 모두가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집 반찬’으로 어르신 일자리 사업까지
책상없는학교에서는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반찬가게를 운영 중이다. 오프라인 매장 ‘부자네 먹을거리’와 네이버스토어 ‘할머니의 집 반찬’이다. 두 곳 다 어르신들이 공동농장에서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부자네 먹을거리’의 최고 인기상품은 ‘계란김밥’이다. 계란김밥은 청소년 하루 영양소를 계산해 만든 ‘아이들 전용 김밥’이다. 부실한 메뉴로 허기를 달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 대표가 개발했다.
가격은 고작 천 원. 반면 영양은 듬뿍 담겼다. 단점도 있다. 판매할수록 적자라는 점이다. 김밥이 입소문나며 어른들이 싹쓸이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아이들을 위한 김밥이니만큼 새 학기부터는 ‘학생김밥’으로 이름을 바꿔 ‘아이들 한정’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책상없는학교’의 비전
책상없는학교는 ‘쌍방향 마을교육공동체’를 꿈꾼다. 마을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겨나고 그 일자리를 기반으로 자기계발과 평생학습이 이루어지는 형태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제공자나 수혜자가 없다. 아이들 돌봄이나 교육, 노인일자리 등의 복지요소가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며 공생하는 생태계가 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사업은 이와 결을 같이한다.
정미정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책상없는학교의 미래를 생각하면 항상 설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행복한 쌍방향 마을공동체로 자리 잡아 포천시 전역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